호랑이 시리즈(18) 수양대군, 세조가 호랑이 사냥에 집착한 이유..

칼럼 > 2023-01-29 23:06:00

‘김종서 콤플렉스’를 씻고, 그보다 우위에 섰다는 것을 증명하는 ‘트로피 사냥 ..

수양대군, 즉 세조의 라이벌 0순위는 김종서다. 수양은 1453년 10월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맨 먼저 김종서를 제거한다. 김종서의 가장 유명한 활약은 세종 연간 북방 개척 때다. 6진 개척으로 두만강 지역을 조선 영역으로 만드는 데 큰 공훈을 세웠다. 이때의 포스가 대단했던지 ‘큰 호랑이(大虎)’라고 불리며 명성을 떨쳤다. 


그래서 김종서는 전형적인 문신 코스를 밟았는데도 장군의 이미지가 강하다. 인문학과 역사에도 밝아 고려 역사서인 <고려사>와 <세종실록> 편찬 책임자를 맡기도 했다. 사실 대호(大虎)는 김종서가 아니라 수양대군 세조의 별칭이었다. 실제 김종서는 체구가 작고, 무예도 서투른 편이었다. 


1440년(세종22) 7월 5일 실록에는 세종이 직접 “김종서는 본래 문신으로 행정관리로서 재주는 넉넉하나 키가 작고, 무예가 서툴러 장수로 적합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한 부분이 주목된다. 


세종대왕이 김종서를 북방에 파견된 이유는 뛰어난 장군감이라서 파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강직한 성정과 정밀한 일솜씨 때문이다. 치열하고 힘든 전투는 김종서 휘하의 이징옥 등이 도맡아 치렀다. ‘큰 호랑이’라는 별명 또한 그의 무예 때문은 아닐 듯. 대담함 때문에 붙은 후세의 평가일 거다. 


■ 대호(大虎) 수양대군 VS 북방 호랑이 김종서

세조는 평생 라이벌이었던 ‘북방 호랑이’ 김종서와 실제 호랑이 모두 사냥에 성공했다. 전설의 호랑이 사냥꾼이 아니라 진정 ‘사냥 왕’이 됐다. 실록 기록상 세조가 직접 주관한 사냥에서 잡은 호랑이는 13마리, 표범은 2마리.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그럼에도 세조에게 있어 호랑이는 무엇일까? 그토록 병적으로 호랑이 사냥에 집착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트로피사냥(trophy hunting)이란 말이 있다. 오락을 위해 사자‧코끼리‧코뿔소 등의 대형 동물을 총이나 석궁을 이용해 사냥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사냥꾼들은 사냥한 동물과 기념촬영은 물론 박제하거나 음식으로 먹기도 한다. 트로피 사냥꾼들의 절대 다수는 미국인으로 남아공,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몇몇 국가는 이를 관광상품으로 허용하고 있다. 요즘도 SNS에는 아프리카 등에서 사냥한 짐승을 앞에 두고 찍은 ‘인증샷’이 넘친다. 


예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아들도 트로피사냥 마니아로 구설에 올랐다. 트로피는 승리의 상징이다. 경기의 우승자에게 주는 컵(cup)이나 방패 등을 말한다. 원래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전승 기념비였으나, 나중에 전리품으로 뜻이 변했다. 


세조는 평생 조카 단종, 친동생 안평, 금성 등 친족 살해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악몽과 불면증 등을 호소하며 52세에 사망했다. 그런 세조에게 호랑이는 아마 적의 목을 얻은 전리품과 마찬가지였을 테다. 


무엇보다 ‘김종서 콤플렉스’를 씻고, 그보다 우위에 섰다는 것을 증명하는 트로피 말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는 “신이 가진 심판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갈지 않는 것이 없다”고 정리했다. 그가 평생 연구한 역사의 교훈이다. (계속)

 

 

▲ 야생동물을 사냥해 뿔, 이빨,  발톱 등을 전리품으로 챙기는 트로피 사냥


 


 

▲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두 아들들은 아프리카에서 트로피 사냥을 즐겨 구설수에 올랐다.




▲ 글 박승규 논설위원    

박은주 기자 / silver51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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