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시리즈(19) 호랑이를 가둬놓고 문틈으로 화살을 쏜 쪼잔한 연산군 ..

칼럼 > 2023-02-19 18:52:00

조선 세조 말년. 그는 이시애의 난과 피부병으로 매우 고생했다. 그런 와중에도 세조의 호랑이 사냥은 계속됐다. 1467년(세조13) 11월 19일과 12월 5일, 연이어 북악산에서 호랑이를 잡았다. 


12월 9일에는 새벽부터 벽제 부근에 출동했으나, 호랑이도 도망가고 비가 올 징조가 있어 철수 했다. 그때가 나이 먹어 노쇠해가던 세조의 마지막 호랑이 사냥이었다. 


1468년에는 호랑이 전문 사냥꾼 착호갑사나 일반 백성이 호랑이를 잡으면 포상을 내린것으로 세조의 호랑이 사냥 기록은 사라진다. 열흘 붉은 꽃 없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그해 9월 8일 세조는 예종에게 선위한 다음 날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조선 역사상 최고의 신궁으로 꼽는 태조 이성계가 직접 잡은 호랑이는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합쳐 3마리에 불과(?)하다. 이성계는 사냥한 호랑이를 고려 말 우왕에게 바치기도 하고, 개성 도성에 들어온 호랑이를 잡기도 했다. 


이성계를 제외하고 다른 왕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을 시켰지만, 세조는 항상 앞장서서 군사를 동원해 포획에 나섰다. 그러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군사를 치료해주거나, 죽은 군사의 자식을 특채해주는 자상한 센스도 보여줬다. 


■ 호랑이를 성균관내 공자의 사당인 대성전에 가둬놓은 연산군


천하의 연산군도 호랑이 사냥은커녕, 호랑이 잡는 것조차 구경 못했다. 연산이 지금 서울 중랑천 살곶이 다리 인근 뚝섬 등에서 매사냥에 나서면서 잠시 관심을 기울였지만, 병조판서 이계동은 “국왕이 범 사냥을 직접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연산군 5년, 1499.8.9.) 


연산은 쪼잔하게 호랑이를 성균관내 공자의 사당인 대성전에 가둬놓고, 문틈으로 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연산군 12년, 1506.2.13) 이미 2년 전 연산은 대성전을 곰이나 호랑이 우리로 만들고, 편액과 공자의 위판까지 태평관으로 옮겨놓았다. 성균관 유생을 몰아내고, ‘흥청’과 기생들의 놀이터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연산군은 오히려 그에게 충언했던 환관 김처선을 미워해 호랑이 굴에 던져 넣는 악행을 저질렀다. 뒷날 <영조실록>에는 호랑이가 김처선을 잡아먹지 않자, 다시 결박해 살해했다고 기록했다. 

 

 

▲ 2005년 개봉하여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영화 ‘왕의 남자’ 여기서 공길역을 맡은 이준기의 인기는 그후 치솟았다.. 


 

▲처선역을 맡은 장항선의 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연산: “처선아, 처선아. 내가 왕이 맞느냐? 선왕이 정한 법도에 매여 사는 내가 왕이 맞냔 말이다.” 


   처선: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큰 사냥을 하시기 위해서는 발걸음 소리를 죽이는 법이옵니다.”



▲ 글 박승규 논설위원     

박은주 기자 / silver51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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