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시리즈(13) 전설의 사냥왕 세조, 호랑이 사냥이 제일 쉬었어요

칼럼 > 2022-12-12 08:57:30

1462년 1월 22일, 서울 북악산에 표범이 나타났다. 조선의 사냥꾼들에게는 호랑이 다음 ‘레어템(레어 아이템;Rare Item)의 준말)으로 손꼽히던 표범 아니던가. 집권 8년차에 접어들어 피부병도 생겼고, 몸이 근질근질하던 세조는 즉시 특별수색대를 편성했다.  


“좌찬성 구치관을 주장(主將)으로, 이조판서 이극배를 좌상 대장으로, 예조 참판 조효문을 우상 대장으로 삼고, 임금이 광화문 앞에 나와서 여러 군사를 지휘했다. 왕이 북악산 산허리에 이르자 여러 군사들이 몰이에 나섰으나 끝내 표범을 잡지 못하고 해가 져서 돌아왔다”


첫날 표범 사냥은 실패했다.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사냥 행차에 무슨 표범이 “나 잡아 잡쇼~” 하고 나올 리 없지 않은가. 세조는 바짝 약이 올랐다. 표범을 잡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마침 이틀 후 눈이 왔다. 눈이 왔으니, 눈 위에 난 발자국을 추격하라는 세조의 명령이 떨어졌다. 역시 오랜 사냥 고수로서 ‘스멜’이 풍겼다. 왕자였던 수양대군 시절 몸으로 체득한 까닭이다. 이윽고 추격조가 땅에 버려진 개를 발견했다. 표범이 물고 가다 버린 것이다. 

 

▲ ①호랑이 몰이를 하는 모습 ② 창으로 호랑이를 공격하는 장면 ③화살을 맞고, 도망가는 호랑이(그림 국사편찬위) 

 

세조는 평소 즐겨 입던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외투(호구·虎裘)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직접 북악산 뒤쪽 고개까지 올랐다. 군기시 무기고에서 화포(대포)까지 동원했다. 당시의 중화기부대였던 ‘총통위’로 하여금 대포를 펑펑 쏘게 하면서 표범을 몰았다. 비로소 놀란 표범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때맞춰 세조의 동생 임영대군이 활을 맞혀 죽였다. 대대적인 표범 사냥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기분이 ‘업’된 세조는 평소 신임하던 넷째 임영대군에게 왕이 타던 말 1필과 표범 가죽을 씌운 의자를 상으로 줬다. 호랑이 가죽보다 표범 가죽이 훨씬 부드럽고, 느낌도 고급스럽다고 한다. 사랑하던 막내 영응대군에게는 말 1필과 사슴 가죽을 내려 주었다. (다음회 계속)


글 박승규 논설위원   




박은주 기자 / silver51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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