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시리즈(14) 끝까지 간다. 세조의 호랑이 사냥 ..

칼럼 > 2022-12-17 08:55:56

세조는 쿠데타를 통해 왕위에 올라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는 권력욕에 영혼을 판 조선의 파우스트였지만, 평생 ‘호랑이를 잡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세조는 궁궐 근처에 호랑이나 표범이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으면,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았다. 하던 거 다 때려치우고, 잡으러 다녔다.  


훗날 정조와는 천지차이였다. 정조는 성균관 뒷산에서 호환이 발생했음에도 ‘엄동설한의 사냥은 백성에게 미치는 민폐가 맹수보다 심하다’라고 반대했을 정도였다. 세조는 황해도에서 호랑이 40마리를 잡은 경험을 가진 자를 특별 채용하기도 하고, 여진족 등 국적을 불문하고 호랑이 잡는 기술이 뛰어난 군사를 우대했다. 


세조는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호랑이가 숨어있을 만한 곳을 에워싼 다음 호랑이 잡이에 나섰다. 호랑이 사냥용 특수 화살인 ‘호전(虎箭)’ 까지 새로 만들었다. 그의 첫 호랑이 사냥 성공은 1456년(세조2) 10월, 경기도 연천에서 이뤄졌다. 이날 무려 3마리나 잡았다. 


■ 세종의 넷째 왕자, 임영대군의 집에 까지 출몰한 호랑이


1460년(세조6) 10월 12일에는 해주에서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았다. 그해 윤11월에는 한양에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보고를 받고, 곽연성을 대신 보냈다. 12월에 이르러서는 양정이 인왕산에서 표범을 몰았으나, 잡진 못했다. 1461년(세조7) 2월에는 양주 토지산에서 호랑이 2마리를 잡았다. 그해 9월 강원도 회양에서 호랑이가 많이 날뛰자, 관찰사에게 날랜 군사를 뽑아 잡게 했다.


1463년(세조9) 3월 12일,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집에 호랑이가 침입해 집에서 기르던 양이 물렸다. 세조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인왕산에서 몰이하게 했는데, 끝내 호랑이를 보지 못했다. 다음날 국가에서 관리하던 녹양평의 말 4필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군마 사육 목장이었다. 현재 의정부시 녹양역 일대로 흥복산에서 호원동 다락원까지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었다. 


세조는 한 걸음에 녹양 목장에 달려갔다. 그날 세조는 수락산과 도봉산 오봉 사이에 호랑이를 몰아 기어코 잡고, 날이 저물어 환궁했다. 그해 8월 24일, 호랑이가 또 녹양 목장에서 말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나섰지만, 이번에는 허탕을 쳤다. 10월 7일에는 의왕시 부근에서 사냥에 나서 호랑이를 잡았다.


그해 겨울 12월 9일, 경복궁 향원정 연못가 주변에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됐다. 호랑이가 궁궐 안에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세조는 즉각 북악산·인왕산 등지를 수색하라고 지시했다. 만약 호랑이가 나타나면, 자기가 직접 나서겠다고 큰소리쳤다. 다음날 동소문부터 북악산까지 호랑이를 쫓았으나, 아쉽게 호랑이를 잡지 못했다. (계속)


 


 

▲ (사진) 합천 해인사 소장 세조 어진. 1458년 그려져 해인사에 봉안되어 현재까지 그대로 보존된 만큼 그 가치는 매우 높다. 곤룡포를 입고 호랑이 가죽을 씌운 의자에 앉아 양손에는 홀을 쥐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왕의 어진과는 달리 불교적 그림 형태로 표현한 특별한 어진이다. 어진 속의 세조는 사실, ‘호랑이 사냥왕’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인다. 순해 보이는 용모이다.




글 박승규 논설위원  

박은주 기자 / silver51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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